<여행의 순간>은 우연히 집어든 책이었다. 다른 여행 책보다 글이나 사진과는 달리 색감이 톡톡 튀어나오는 책이었다. 역시 디자이너의 여행 책이었다. 그녀는 NHN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직업이 디자이너인 만큼 다양한 것을 보고자 한다. 그녀에게 여행은 공부이자 체험이었던 것이다. 책은 그녀가 여행한 도쿄, 런던, 브라이튼, 파리, 니스, 뉴욕, 방콕으로 안내한다.
카페 가운데를 차지한 큰 테이블에 앉은 내게 얼음물을 갖다 준 젊은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조용히 쉬고 싶어서 들어왔다고 하자, 그는 내게 호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좋은 재료를 구해, 매일 조금의 쿠키와 빵을 구워 차와 함께 내놓고 있다고. 메뉴도 계절이나 재료 수급 상황을 고려해 거의 매달 바뀐다. 디저트 세트를 주문하자, 고소한 스콘과 크림, 꿀, 팥, 푸딩, 잼이 담긴 민무늬 접시를 내왔다. 향이 신선한 차 한 잔, 기교 없이 정직한 솜씨로 만든 스콘 한 조각은 지친 나를 순하고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P29
변두리에 살아서 그런 가 정직한 솜씨로 만든 빵 만드는 빵집을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 마치 텔레비전에서만 나오는 소수의 빵집을 소개하는 것만 같다. 가끔은 질릴 정도로 먹은 B사나 T사보다 자신만의 색깔로 빵을 만들어내는 집을 보고 싶다. 이런데 웰빙까지 바라는 것은 왠지 사치스런 기분까지 든다. 그래서 나는 꿈꾼다. 천편일률적인 공장에서 찍어내는 빵이 아닌 자신의 솜씨로 발휘한 그곳에서만 맛볼 수 없는 그런 빵집이 우리 동네에도 들어오기를 그리고 그 빵맛만큼이나 정직한 주인이 나타나기를 말이다. 이런 마음이니 작가의 만남이 반가웠다. 따뜻하고 포근한 빵에 잼을 발라 달달한 빵맛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도시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취향이 생활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구경하는 것이다. 하물며 돌을 뒤집기만 하면 뭔가 나타나는 손쉬운 보물찾기 놀이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독특한 상점들의 대행진은 놓치기 아까운 기회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엔 가끔 정답이 있다. -p87
런던 노팅힐에 도착한 저자는 그곳에 디자인과 색감에 감탄한다. 문 색깔이 파란색에 벽은 분홍색인 건물을 바라본다. 또, 등을 감싸는 형태의 의자는 이전에 보지 못한 독특한 디자인이다. 앤틱하면서도 엘레강스하다. 그리고 그것들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삶에 녹아들어 있다. 빈티지 마켓과 리버티백화점을 거닐다보면 패션의 경계선이 없는 그곳에서 자신의 마음에 쏘옥 드는 물건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여행지에서 세심한 포장을 해주는 가게주인과 새로운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기도 하고 추억하기 위해 좋아하는 곳곳의 주방사진을 필름카메라 콘탁스 아리아로 찍는다. 그리고 디자이너가 설계한 호텔을 머무르기도 하면서 그들의 손길을 느껴본다. 그리고 우리나라보다 좀 더 다양한 곳곳의 예술적 거리에, 영수증과 같은 생활 속 예술에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렇게 7년 동안 여행한 기록이다. 추억은 겨겨히 쌓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녀는 또 여행을 떠나리라 여겨진다. 아직 그녀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많음을 알았으므로, 더 멀리 더 다양한 곳을 다니고 싶을 것이다.
그녀에게 부러웠던 것은 그녀가 여행을 다닌 시간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은 3월말 비수기에 방을 얻어 니스에서는 무료로 업그레이드되어 스위트룸에 묵었다는 기록이 있다. 다른 사람은 출근하고 회사에서 한숨을 쉴 시간에 그녀는 반대로 걸었던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고 또 유유자적하게 거닐었을 생각을 하니 그녀의 시간이 조금은 부러워졌다. 비수기이므로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조용히 모든 것을 내 것인 양 감상하기에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의 빈자리가 더 커보였을 것이다.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을 더 많이 들여다봤을 것이다. 온전한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랬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몸소 체험했을 것이다. 느리게 밥을 먹었을 것이다. 좀 더 많이 잘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앓기도 했었을 것이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반대로 걸어가는 것, 그것을 할 수 있으면 그녀처럼 바라볼 수 있지 않을 까.
7년 동안 7개의 도시를 거닐다 돌아온 저자는 조금 멀었던 산책길 구석구석의 추억들을 차분히 꺼내 들려주고 있다. 도쿄와 런던, 파리, 니스 등 저마다의 분명한 색을 가진 그들만의 문화가 느껴지며, 일기처럼 기록해 놓은 당시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곳의 거리를 느껴볼 수 있다.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하기 위해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그들의 공기에 섞여 흐르듯이 움직이는 저자의 시선이 편안함을 준다.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쓰여진 글과 함께 사진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깔끔하게 편집되어 들어간 매 장의 사진들은 거리에서 만난 소소한 일상들을 잘 포착해 담아내고 있어 각 도시의 꾸밈 없는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준다. 뒷부분에서는 여행을 하는 동안 만난 보물 같은 장소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맛집이나 박물관, 즐길 거리 등을 다양하게 볼 수 있다.
Prologue 도시의 모퉁이, 벤치에 앉아서 | 콘탁스 아리아와 함께 한 시간 |여행+친구
한갓진 그날의 도쿄 산책
도쿄의 아침 | 혼자, 어슬렁, 걷는다 | 소박한 브런치 | 여행 취향
소녀가 놀던 놀이터 | 순하게 마음이 녹는다 | 로망, 키친 |잡화의 기쁨
시모기타자와는 빈티지 | 비 오는 날의 키치조지 | 따끈한 나카메구로 산보
도쿄 하루 메모 | 친절한 의자 | 나와 친구할래요? | 그녀의 재봉틀
도쿄, 가을인가요? | 아침 산책 | 요코하마의 갈매기 | 길 위의 자전거
눈빛이 향하는 곳 | 그녀에게 말을 걸다 | Letter from Tokyo
오래된 기억, 런던과 브라이튼
비와 함께 런던 걷기 | 생활의 흔적 | 노팅힐 구석구석 | 런던의 물건들
쉬는 시간 | 브라이트, 브라이튼 | 차창 밖의 도시 | 런던의 친절한 지혜 씨
Letter from London
파리와 니스 사이를 달리다
빵과 커피, 그리고 | 바람 부는 날, 몽마르트르 언덕 | 그 언덕길에 숨어 있는 것들
오렌지, 그린, 핑크의 마레 | 서점에서 책 읽기 | 공중에서 바라본 파리
낡아도 좁아도 불편해도 괜찮아 | 문득 찾아온 봄의 첫날 | 커피와 초콜릿
미술관에 놀러가기 | 반가워요, 니스 | 니스의 바다 | 스위트 룸 305호
오랜 벗의 어깨에 기대어 | 살레야 시장의 맛 | 바람과 미로의 중세 도시
생폴 드 방스에서 멈춘 시간 | 보이지 않는 손 | 언젠가 다시 올게요 |돌아가는 길
파리, 브르타뉴 그리고 프랑스 | Letter from Paris
천천히 흐르는 뉴욕의 시간
안녕, 뉴욕 | 뉴욕 피플 | 달디단 형광빛 컵케이크 |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오후
미술관 옆 갤러리 | 책의 냄새 | 맨해튼 리버 하우스 | 골목의 점령군, 스트리트 아트
윌리엄스버그 사람들 | 호텔 온 리빙턴 | 천천히 흐르는 카페의 시간 | 뉴욕의 두 사람
Letter from New York
어쩌다 마주친 방콕
어쩌다 마주친 | 카오산 로드의 카오스 | 호텔 리플렉션스 210호
구운 바나나와 툭툭 | 디자인 도시, 방콕 | 그리운 그녀의 손길
Epilogue 다정한 쉼표, 여행의 순간
Taste & In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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