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고를 때 큰 것을 고르려고 한다. 개당 얼마 이렇게 가격이 붙어있는 과일중에서 가장 많은 것을 가져가려는 욕심일 것이다. 책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있어서 좀 더 멋있고 두꺼운 책을 고르면 뭔가 "폼"이 난다는 이유로 내구수명이 오히려 짧은 양장본이 인기를 끌기도 한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는 얇은 문고판 책들이다. 페이지가 많은 것도 아니어서 그 안에 내용이 다 들어갈까 일견 의심스러울 수도 있지만, 의외로 볼거리가 많이 들어있는 문고판 시리즈이다. 나는 문고판을 꽤나 좋아하는 편인데, 지하철이나 버스 한켠에서 들고 읽는 것을 좋아해서 책의 휴대성이 내게는 큰 가치이기 때문이고, 쓸데없는 허세보다는 실속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잔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전체적으로 크게 놓고 볼 때에는 연대기적 구조를 따르고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무미건조한 역사서식 진술방법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작품세계에 대해서도 비평가들의 진술을 인용함으로써 권위를 확보하면서도 읽을거리를 충분히 제공해준다.
많은 도판들과 그에 대한 충분한 비교설명 역시 꽤나 칭찬받을만한 장점이며, 미술관련 서적이니만큼, 저자와 작품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데에 별 흠이 없다. 내용의 수준도 낮지 않은 편이어서(디스커버리 총서들의 공통점) 전문가 수준이 아닌 이상 이 책은 관심있는 독자에게는 일독의 가치가 있어 권한다.
올컬러 화보들 뒤에 등장하는 흑백 1도로 인쇄된은 다른 책들에서는 쉽사리 볼 수 없었던 주위에서의 증언과 기록들을 한데 모아서 세잔과 그에 대한 주위의 시선을 어렴풋이 보여주어서 또한 일품이다.
굳이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의 아쉬운 점을 들자면 내용이 책에 따라 약간 기복이 심한듯 한데, 적어도 미술관련 서적에서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될 듯 하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아트지에 올컬러판인데, 화보가 중요한 미술에서는 큰 위력을 발휘하는 듯도 하고, 필진들도 상대적으로 나아보인다.
짧게 요약하자면, 제목처럼, 이 책은 작지만 내용은 알찬 세잔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에 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인상깊은구절]샤토 누아르 그림과 비베뮈 석산 그림은 물론이고 후기 생트 빅투아르 그림에서, 진녹색 양괴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구상적 측면에서 보자면, 절대로 나뭇가지를 그린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이것은 세잔이 임의적으로 채색한 전형적인 예로서, 실제 리얼리티의 재현(구상화의 전통)에서 일탈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세잔의 전작품에서 바탕이 되는 것은 늘 가시적 리얼리티였음에도 세잔은 이미 추상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라울 뒤피나 페르낭 레제르, 그리고 그 밖의 많은 현대 화가들은 데셍과 색채의 불일치를 그들의 화폭에서 즐겨 다루고 있고 그래서, 일반 미술 애호가들도 이제 색채와 형태는 별개라는 주장을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추상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데셍과 색채의 분리를 시도한 사람은 세잔이 처음이었다. 세잔의 시대에 (구상적 내용이 없는)형태와 색채만으로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겠다는 방식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20세기 현대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연 세잔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환락, 대주연, 납치 등 강한 육욕적 분위기를 드러내던 초기 화폭에서 인상주의 시대로 들어선 후의 밝은 색채감, 그리고 1880년 경 인상파의 수법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 세잔의 점진적인 스타일 변모가 세잔의 그림들과 함께 담겨 있다.
1. 유년 시절
2. 인상주의 시대
3. 자연과 평행한 조화
4. 이제 약속의 땅이 보입니다
5. 기록과 증언
카테고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