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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의 한국대중문화사 2

강헌이라는 비평가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던 때가 있었다. 이름도 낯선 대중문화평론가라는 자막을 달고 연예프로그램에 등장했던 그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춰버렸다. 건강문제 때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고, 그래도 아직 그가 건재하다는 것에 안도를 할 때쯤. 그는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쏟아내기라도 하듯이 책을 출판해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강헌의 한국대중문화사이다.   한국대중문화사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대중문화”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내가 읽은 책은 1945년부터 75년까지를 다루고 있는 2권으로, 2017년 현대까지 오려면 아직 두, 세 권은 더 펴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그는 엄청난 자료를 바탕으로 대중문화평론가인지 역사학자인지 모를 근대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의 분야가 매우 폭넓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결코 그 깊이가 얕은 것도 아니다. 대중문화사는 그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 배경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기에, 아무나 쓸 수 있는 책도 아니다. 강헌이라는 뚝심있는 작가가 찬찬히 앉아 써냈다는 느낌이 강하게 오는 책이다. 두께에 놀랄 필요는 없다. 읽기 어렵지 않다.   두 번째 책은 해방과 함께 시작된다. 해방의 그 혼란기를 거쳐 이승만 정권의 집권과 몰락, 한국전쟁, 미군문화, 4.19와 5.16을 관통하며 박정희 정권의 명암을 배경으로 우리 대중문화사는 요동치고 있었다. 해방 이후 좌파의 인민항쟁가와 일본 국가풍의 독립행진곡이 공존했듯이, 우리는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했고, 거기에 미군문화를 받아들이며 더욱 종잡을 수 없는 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저자는 박정희 통치기 18년 5개월 동안 지금 우리가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는 이 나라의 사회, 정치, 경제의 정체성이 규정되었으며, 그 시대에 만들어진 룰에 의해서 우리가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삶이 규정되고 있다고 썼다. 내가 아무리 부정해도 그가 만든 체계에서 살아왔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다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본다.   이 책에 적힌 여러 글 중에서도 박정희 정권의 한일회담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분쟁의 여지가 되는 독도를 폭파해버리자는 말까지 했다니 사실일까? 모든 역사적 사실을 덮고 받아낸 돈은 겨우 미국에서 1년 원조받는 금액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아직도 우리는 일본에게 사과 한 줄 받지 못하고 있다. 과연 잘 한 일일까? 아직도 박정희가 잘 했다는 말이 통하는 세상일까? 한일청구권 협정에 대한 정확한 국민적 인식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자신들은 일본에게 돈을 받으며 경제적 난관을 돌파해보려 했지만, 결국 친일로 몰리고 있다는 여론의 동향을 파악한 뒤 취한 조치는 더욱 기가 찬다. 국면 전환용으로 왜색가요 파동을 일으킨 것이다. 대학 다닐 때, 해금이 되었다며 구성진 목소리로 “섬마을 선생님”을 불러대던 선배의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우리가 살아왔던 세월 속에 그렇게 많은 정치적 사연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또 다른 충격은 지금의 지역감정이 해방이후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 1971년 선거에서 시작되었다는 글이었다. 전라도 출신 후보가 등장하는 1971년 선거에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지역 감정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언론과 정치권의 관계 등에 내가 몰랐던 사실들이 많이 적혀 있어 조금은 죄송스럽지만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대중문화서라는 생각으로 읽었다가 정치문화사를 읽은 듯한 느낌을 받은 책, <강헌의 한국대중문화사 2: 자유만세>이다. 

문화 전방위의 르네상스인, 강헌 그가 한국의 대중문화사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2015년 음악사를 매개로 동서양과 고금을 넘나드는 문화사를 종횡무진 설파한 책 전복과 반전의 순간 으로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던, 뒤이어 생사의 경계에서 독학한 명리학을 한 권의 책 명리 를 통해 단숨에 골방에서 광장으로 끌어내는 것과 동시에 그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거침없이 열어젖힌 저자 강헌이 이제 그가 온 생애에 걸쳐 섭렵한 온갖 경험과 학습의 총합을 장착한 책을 들고 나타났다.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아는 사실처럼 그는 대학에서는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대학원에서는 음악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영화를 만들었으며, 대중음악평론가라는 이름으로 가장 널리 알려졌다. 그뿐인가. 그는 뮤지컬을 기획하고, 온갖 공연을 만들어 무대에 올렸으며, 곁가지로 와인, 축구, 음식 등 관심의 촉수가 닿는 거의 전 분야에 걸친 왕성한 호기심을 마음껏 충족하며 살았다. 심지어 뜻하지 않게 맞닥뜨린 생사의 경계선에서조차 그는 ‘명리’라는, 이전의 그의 족적과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 대한 새로운 관심사의 지평을 넓혔고, 그로 인해 어떤 누구도 해내지 못한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넓은 관심사’에 필연적으로 따르게 마련인 ‘얇은 전문성’이란 찾아볼 수 없다. 즉, 하나의 분야에 관한 충성심 높은 몰입 대신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그이기는 하나, 하나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겠다는 어떤 다짐과 노력 없이, 취미인지 관심인지 모를 애매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다양한 분야의 섭렵의 뒤에는, 그런 경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떤 아마추어리즘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어떤 분야에 꽂히는 순간 그에 관한 놀라울 정도의 지적 자산을 축적하고, 그것에 대한 통찰을 얹어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뭔가를 작정하지 않고 살아온 이의 족적으로 치기에 그가 이룬 독보적인 관점은 그야말로 눈부시며 그야말로 총합적이고, 그것의 결정체를 담아 내놓은 것이 바로 강헌의 한국대중문화사 (전 4권 예정, 1~2권 우선 출간)이다.

책을 펴내며

1. 해방의 환희와 분단의 신음, 정치적 대중문화의 폭발과 몰락
해방의 무렵에 울려퍼진 노래 | 1945년 8월 15일, 해방인가 해방이 아닌가 | 삼팔선을 둘러싼 미국과 소련의 신경전 | 승리에 빛나는 나의 군대는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 | 1945년 8월 15일의 풍경 | 해방에 대한 우리의 착각, 미국에 대한 일본의 착각 | 한편 북한에서는 | 미군, 점령자로서의 정체를 드러내다 |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의 갈림길 | 좌우 갈등의 전면화, 이념도 나뉘고 문화도 나뉘고 | 좌파의 [인민항쟁가]와 일본 군가풍의 [독립행진곡]이 공존하다 | 해방공간에 등장한 첫 영화, [자유만세] | 작곡가 박시춘과 가수 현인이 만들어낸 새로운 변화의 서막 | 전쟁 전야, 한국전쟁을 둘러싼 복잡한 속사정 | 전쟁 이전의 비극, 제주4·3사건과 여수·순천사건 | 한국전쟁, 김일성의 어리석은 전략의 결과물 그리고 [전우여 잘 자라]

2. 미군의 GI문화, 전쟁의 폐허를 점령하다
한반도에 미국이 아닌 미군이 들어오다 | 미군 문화, 폭발적 유입의 시작 | 한국전쟁을 둘러싼 여러 당사자의 속사정 | 민간인 사망자 수가 유난히 많았던 전쟁 | ‘국민보도연맹’이 불러온 참혹한 비극의 역사 | 전쟁의 피비린내 속에도 불렸던 노래들 | 대중가요에 서서히 자리잡은 미국의 문법 | 즐길 것이라고는 노래밖에 없던, 이 시대는 노래의 시대 | 전쟁 전후, 여러 모로 불안정했던 출판 문화 | 트로트에서 팝으로, 대중음악의 주도권이 넘어가다 | TV는 아직 없던 시절, 대중을 사로잡은 라디오 시대 | 미군 문화의 첨병, 미군을 위한 방송 AFKN의 남한 착륙 | 폭발적으로 들어온 미국의 리듬 스타일 | 맘보, 1930년대 미국을 출발하여 미군을 통해 남한에 들어오다 | 소설, 영화 그리고 춤바람…, 사회 전반에 불어닥친 맘보 열풍 | 소설과 영화의 상관 관계, 그리고 도래한 잡지의 시대 | 종신집권의 욕망을 드러낸 이승만의 사사오입 개헌, 부정선거 | 그리고 [비 내리는 호남선]

3. 쿠데타의 주역들, 매스미디어 시대를 열다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로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열다 | 4·19혁명을 불러온, 그 이전의 맥락 |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고등학생의 시신, 혁명의 발화점이 되다 | 정치 폭력배, 혁명의 거센 불길에 기름을 붓다 | 4·19혁명, 이승만 대통령을 독재 정권의 권좌에서 끌어내리다 | 미국이 선택한 새로운 파트너, 민주당 그리고 장면 | 우리 역사에서 4·19혁명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 혼란의 와중에도 피어난
영화 예술의 가능성 | 대중음악, 멀티태스크 엔터테이너 시대의 개막 | 달라도 너무 달랐던 북한과 남한 | 남한에 불기 시작한 반미의 기운, 그리고 미국의 또다른 선택 | 그의 집권기로부터 오늘날 우리의 유전자에 깊이 각인된 그 무엇 | 다른 의미로서, 문화 대통령이었던 그분 | 연산, 왕권과 신권 쟁탈전에서 패배한 군왕 | 연산, 그는 어쩌면 | 웃고 싶어도 웃을 수 없는 한 편의 쇼, 5·16군사쿠데타 | 춘향이를 둘러싼 한판 승부, 영화 [성춘향]과 [춘향전] | 영화관에 최초로 등장한 티켓 파워, 고무신 관객의 출현 | 채찍과 당근을 들고 문화를 권력의 시녀처럼 다루다 | 영화 시장에서의 직접 배급과 간접 배급에 대한 이해 | 그분의 입맛에 맞출 것, 우수 영화 추천을 받기 위한 기본 조건이자 모든 것 | [오발탄], 암흑 직전에 탄생한 걸작 | 권력자들이 벌인 문화 탄압과 검열의 역사 | 면면히 이어져온 정치 폭력배 활용사의 한 장면

4. 경제개발 시대, 극장가에 등장한 고무신 관객
매스미디어 시대, 스타는 탄생하지 않는다. 오직 만들어질 뿐 | 동서막론, 독재자들은 미디어를 사랑했다네 | 권력자와 방송국의 상관 관계 | 이 시절, 안방극장 TV가 있던 풍경 | 미8군 문화는 TV를 타고 | 새롭게 등장한 대중음악의 경향성 | 문화 소비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한 20~30대 여성들의 속사정 | 1960년대의 뜨거운 이슈, 박정희 정권의 한일회담 | I’ll be back! 트로트의 왕정복고 | 최고의 흥행작 [맨발의 청춘], 그러나 일본의 표절작 | 이미자가 불 붙인 트로트 열풍, 남성 트로트 가수들이 이어받다 | 나훈아냐, 남진이냐! 한국 최초의 오빠 부대 탄생 | 문화에도 계층이 있다, 그녀들이 트로트를 선택한 까닭은 | TV에는 패티김과 최희준이, 음반 시장에서는 이미자와 나훈아가 | 노라노 패션, 한국 패션사의 전환점이자 여성의 동반자 | 왜색가요 파동, 죽고 살기를 거듭한 트로트, 그 불멸의 역사 | 권력자들이 벌인 문화 탄압과 검열의 역사 | 신문사, 방송국은 통제당하고, 모든 표현물은 사전 심의를 거쳐야 했던 시절 | 5·16군사쿠데타 이후, 권력을 갖기 위해 대중에게 폭력을 휘두르다 | 한국 영화의 전성기, 그러나 그 어두운 나날의 역사 | 분리하여 통치하라! 박정희 시대에 다시 소환된, 디바이드 앤드 룰 | 홍콩까지 건너간 1960년대 한국 액션영화 붐

5. 제3의 물결, 청년문화의 봉기와 제4공화국
박정희, 삼선개헌을 통해 유신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하다 | 1971년 대통령 선거,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 그 이상의 부정선거 | 한편, 주겠다는 자유도 받지 않겠다던 언론사 | 박정희, 그야말로 박정희주의자였던 그 사람 | 국민교육헌장 배포, TV트로이카 체제의 완성 | 1970년대의 문을 열어젖힌 전태일의 분신,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 | 대통령이 되기 위해 지역 감정을 조장하다 | 한국 현대사의 두 번째 분수령, TV특별소비세 인하 방침 | 수출의 국가 종교화, 모든 길은 수출로 통하다 | 값싼 노동력을 위해 노동자는 군인화가 되고, 농촌은 공동화가 되었다 | 박정희 정권을 화나게 한 김지하의 [오적] | 죽은 정인숙이 낳은 아이의 아비는 과연 누구냐 | 영화에서 TV로, 문화의 권력이 이동하다 | TV시대의 새로운 총아, 스포츠 | 청년문화 세대, 낭만의 혁명에서 혁명의 낭만으로 | 트윈폴리오, 통기타의 시대 | 한대수라는 돌발변수의 등장 | 김민기, 양희은의 등장이 의미하는 바 | 그리고 [아침 이슬] | 7·4남북공동성명, 남북한의 권력자들이 함께 짜고 친 한판 사기극 | 시대의 라이벌, 나훈아와 남진은 무엇이 달랐던가 | 청년문화 세대가 주류를 접수하다 | 박정희는 청년문화를 왜 싫어했을까 | 긴급조치와 대마초 파동, 청년문화를 향한 폭거 | 신중현이라는 과녁을 향한 전면전, 영웅의 슬픈 몰락 | 트로트의 왕정 복고와 한국 영화의 몰락 | 모든 것이 극으로 향하던 시대, 모든 것이 그로부터 시작되다 | 세대의 교체와 함께 어둠 속에 꽃핀 문학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