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만 본다면 이 책은 예술작품들을 소개하는 에세이와 같다. 특히 도시란 글귀가 마음에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도시 속의 삶을 지옥에서의 삶처럼 묘사하는 책들이 서점을 장악한지 오래도, 그래서인지 일탈이니 도피니 하는 낭만성만을 강조하는 여행에세이가 역시나 인기인 요즘에 이 책은 매우 신선해 보였다. 무엇보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이 도시이고, 그것도 한국에서 가장 클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구가 매우 많은, 그래서 지옥이라고들 이야기되는 그런 도시에서 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삶이 그다지 우아하지 않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면서도 도시를 못 벗어나는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크게 드는 시점에서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도시를 볼 수 있으면 하는 마음에서, 어쩌면 도시를 사는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일종의 구원을 찾기 위해 시작된 이 책 읽기는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도 가게 됐다. 도리어 이 책은 지금까지 살고 온 도시에 새로운 기운을 불러 일으키는 공공미술에 대한 이야기와 그 작품들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책이다. 그리고 도시인들을 그렇게 만든 도시에 대해 날카로운 메스를 댄 그런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리 간편하게 읽을만한 책이 아니다. 무겁다. 책의 두께를 아우르는 깊이 있는 철학과 독자들에게 의식의 변화와 행동을 요구하는 강한 주장까지 담고 있는, 그리 쉽지 않은 책이다. 획일화되고 수동적으로 된 공간으로 상징되는 근대 도시 속에서의 인간미를 찾으려는 도전이 이 책에 가득하다. 페이지 수로만 정의될 수 없는 탈근대인의 도전과 인식이 글과 그림 곳곳에 숨어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근대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에서 탈근대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인식을 소개한다. 에세이로 구분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 책은 현대 철학서이다. 다만 그런 내용을 밝히는 수단으로 도시 속의 예술 매체들이 사용됐다는 점이 특이한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도시 속에 숨겨진 예술작품들이 그리 간단한 작품처럼 다가오지 않았고 숙고를 요구하는 좀 고역을 요구하는 작품들로 다가온다. 참 세상 살기 힘든 것 같다. 편안하게 볼 수도 있던 것처럼 보인 작품들도 가장 원시적이고 힘든 사고력을 요구하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 아니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서로의 인생이 다르다는 본질적인 차이 이외에도 비판의 대상에 대한 인식을 서로 공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를 살면서 근대의 고마움을 이제 너무 당연하다고 여기는 그럴 시간에 새로운 대안인 탈근대주의적인 기반 하에 과거를 비판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장점과 단점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비판이 이 책에선 생산적으로 작용하며, 많은 점에서 참고할 만하고, 또한 근대를 추진한 인간들이 꼭 받아들여야 할 많은 것들이 풍부하다. 작가의 현대적이고 탈근대적인 인식에서 비롯된 과거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사실 책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그런 시도를 하는 매력은 충분히 볼만 하고, 또한 예술에 담긴 다양한 삶의 인식과 철학은 들어 볼만 하다. 이 책이 시도하고 있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다. 다만 과거를 비판하면서 나온 새로운 인식은 그것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다시 비판을 받을 것이다. 어차피 이데올로기든 철학이든 허점투성이고, 또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한 측면 역시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세의 무지한 신의 세계를 비판하고 새로운 세상을 연 합리적 이성의 시대를 연 인간위주의 근대 역시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그 단점들이 회자되면서 비판의 꼭대기 위에 서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것은 조선의 성리학 역시 마찬가지였고, 탈근대 역시 그런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모더니즘이 비판하면서 등장한 혼이 없는 기계론이 이제 정신을 다시 부활시키며 등장한 탈근대에 의해 비판 받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인간들이 갖고 있는 상식과 이념의 대결 속에서도 도시 안에 제공된 공공미술들은 그래도 남아 있을 것이다. 도시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말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기꺼이 제공된 이 매력 있는 작품들은 각자의 이상을 담은 이념들과 그것들 간의 논쟁 속에서도 계속 말이다. 그에 대한 해석이 무엇이든 도시를 사는 사람들에게 그 작품들은 다양하면서도 풍족한 여유를 줄 것이다. 도시의 날카로운 생활의 고통 속에서 그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논쟁 너머에 있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여유, 바로 그것이 도시 속 작품들의 진정한 가치일 것이다. 인간은 유한하지만 이것들은 계속 남아 있으면서 다음의 세대에게 철학은 물론 여유도 많이 줬으면 한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한다.
이름 없는 골목길 담벼락에서 세계 유명 작가의 작품까지 도시와 예술 그리고 삶에 관한 사유와 성찰의 기록 지구 전체 표면에서 도시가 차지하는 면적은 0.2%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토록 좁은 도시에서 사는 세계인의 비율이 2007년 기준으로 50%(33억)를 넘어섰다. 2007년은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에 사는 사람이 시골에 사는 사람의 수를 넘어선 해이다. 싫든 좋든 인류의 절반 이상은 도시에서 살고, 도시는 인류 삶의 터전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도시란 어떤 의미인가? 과연 도시와 전원은 화해할 수 없는가? 왜 도시는 삭막하고, 언젠가는 떠나고 싶은 공간이 됐을까? 이 책은 그 대표적 원인을 도시의 사물화에서 찾아내고, 도시 속 예술과 작품을 통해 도시와 도시인의 삶을 재구성한다. 도시를 걸으며, 우리가 미처 몰랐던 작품을 만난다. 그를 통해 일상이 예술이 되는 도시 속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총 147개(부록 ‘동네 예술길 탐방지도’ 포함)의 공공예술을 통해 도시와 삶을 재해석한다. 작가는 도시를 생존과 생산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삶과 일상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거리를 뒤덮은 제품과 시장으로 축소된 도시를 작품의 도시로 재구성할 때, 일상이 저주스럽지 않은 공간으로 도시는 다시 태어난다. 인간, 공간, 시간의 사이(間,간)를 채우는 관계와 소통의 예술로 도시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도시 예술 산책 영상보기 *클릭*
머리말
0 걷자, 느리게
1 사람이 제일 아름답다
돌로 쌓아 올린 희망 : 김석 외 시민참여 〈서울, 황금알을 품다〉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 김정민 〈장사의 꿈〉
하늘을 걷는 도시 : 조너선 보로프스키 〈지붕 위를 걷는 여자〉
사람이 제일 아름답다 : 조너선 보로프스키 〈해머링 맨〉
이카로스의 꿈 : 정현 〈날고 싶은 사람〉
달동네 : 이영섭 〈마을 풍경〉
그래도 뛴다 : 김병철 〈달리기_도약 21세기〉
도시 읽기① : 시골 쥐와 도시 쥐
도시 읽기② : 도시촌평
2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소망을 건축한 돌 : 조임식ㆍ최연숙ㆍ신승수 〈인왕산에서 굴러 온 바위〉
기억상실의 도시 : 안규철 〈보이지 않는 문〉
도시를 ‘힙합’하라 : 김민규 〈땅속 예술마당〉
봄날은 간다 : 니키 드 생팔 〈미의 세 여인〉
엄마를 부탁해 : 루이스 부르주아 〈엄마〉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다 : 홍성경 〈하늘기둥〉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 최욱 〈무제〉 외
기억을 긷는 베를린 호프 : 청계천 삼일교, 베를린광장
도시 읽기③ : 새로운 도시와 새로운 인종
도시 읽기④ : 도시, 인류 최후의 고향
3 소유냐, 존재냐
바늘 끝 위의 인생 :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무제2007_티하우스〉
흔들리며 피는 꽃 : 안젤라 블로흐 〈헌화〉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 : 박봉기 외 〈동시상영〉
당신이 최고 : 세자르 발다치니 〈엄지〉
섞여야 산다 : 최정화 〈눈이 부시게 하찮은〉 외
메멘토 모리 : 프랭크 스텔라 〈아마벨〉
레옹이 화분을 들고 다니는 이유 : 장 피에르 레노 〈백의민족〉
쇼를 하라고? : 김미애 〈유물〉
청계천의 부표 : 래스 올덴버그 〈스프링〉
도시 읽기⑤ : 제품, 작품을 밀어내고 도시를 점령하다
4 길에서 길(道)을 묻다
정도(正道)의 아름다움, 아름다움의 정도 : 안규철 〈바람의 길〉
Stairway to Heaven : 김을ㆍ안규철〈하늘계단〉
당신을 ‘신선’으로 모시는 의자 : 정재철 〈신선도〉
길은 걷는 강, 강은 흐르는 길 : 송파 워터웨이
잊힌 자들의 부활 : 정원철 〈S_peed〉
더불어 숲 : 헬렌 박 〈장소성/비장소성〉 외
도시 읽기⑥ : 도시를 바꿔라!
도시 읽기⑦ : 도시에 대한 권리
5 관계한다, 고로 존재한다
가슴과 몸뚱이를 쪼개라 : 모한 아마라 〈대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 배영환 〈수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스스로 참여하고 더불어 주인 된 세상 : 남산 N서울타워, 〈사랑의 열쇠〉 외
안보다 바깥이 포근하다 : 임옥상 〈상상_거인의 나라〉 외
멍석 깐 도시마당 : 이교원ㆍ홍승남‘종로타워 앞마당’ 외
맞든다, 고로 공존한다 : 구헌준 외 〈시장구경〉
좌고우면하는 ‘사이’ : 김광수 〈100개의 알 수 없는 방〉 외
도시 읽기⑧ : 안팎의 신화
도시 읽기⑨ : 사이의 미학
6 일상과 이상, 그 사이
그리워 그리다 : 서울드로잉클럽 〈사랑해 사랑해〉
니 내 존나? : 이진경 〈부산 갈매기가 그냥 갈매긴 줄 아니?〉
구름도 쉬었다 가는 간판 : 디자인 벼레별기역 ‘간판 프로젝트’
학교를 넘어서 : 김광수 〈색동 벽 사이로〉 외
여신이여, 다시 취하소서! : 아그네스 아렐라노 〈달의 여신, 할리야〉
삶은 예술, 예술은 삶 : 공화국 리라 〈예술텃밭〉
도시 읽기⑩ : 일상의 모호성
도시 읽기⑪ : 미의 일상화, 일상의 미화
7 풍경이 되는 도시
사랑은 곡선이다 : 최병훈 〈예술의 길, 사색의 자리〉
불같은 아버지, 물 같은 어머니 : 조성룡 〈녹색기둥의 정원〉
또 하나의 얼굴, 간판 : 목연수 ‘목인박물관’ 간판
내 자리는 어디일까? : 레오폴도 말레르 〈원초적인 관절〉
낮으면 높고 높으면 낮다 : 변승훈ㆍ최태훈‘동네아트센터 길상사’
토끼굴에 새긴 자유 : 〈압구정동 그라피티〉
달빛에 젖은 햇빛 : 강익중 〈광화문에 뜬 달〉
도시 읽기⑫ 다시, 그리고 함께
도시 읽기⑬ DEㆍ탈영토화ㆍ재영토화
부록: 동네 예술길 탐방지도
길 중의 길, 정동길
권력의 길 vs 참여의 중심, 광화문 거리
서울 서촌 예술길(효자동~통의동~청운동)
예술과 낭만의 둥지, 인사동길
‘진짜 서울’은 여기, 삼청동길
생명ㆍ생업ㆍ생활의 길, 청계천
산업화ㆍ근대화의 길, 을지로
젊음의 거리이자 공연예술의 메카, 대학로
차도남의 만보, 잠실 올림픽로~강남 테헤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