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청년 새끼
ㅇ장마철답게 폭우가 쏟아진다. 우산이 있어도 다 젖을 듯하다. 순간 하루하루가 치열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힘껏 노를 저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치 앞으로도 나아가지 못했던 것만 같았던 지난날이. 그때 난 분명 앞이 보이질 않았다. 대체 취업을 위한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기는 한 거냐는 다그침을 들으면서 한없이 작아지기 바빴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참 미웠다. 취업이라는 문제가 당시로선 넘지 못할 산처럼 거대해 보였다. 근데 요즘에는 모든 청년들이 미운 표정을 짓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아가는 극소수의 금수저 인생을 제외한 대다수가 예전의 내가 겪었던 끝이 보이질 않는 터널 속 암흑과도 같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본다. 어떻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진정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내 탓이오. 종교적 색채가 진한 문양과 함께 적힌 이 문장을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곤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가 내 탓이라면 삶이 얼마나 힘겨울까. 세상은 청년들을 꾸중하는 일에 아주 능숙하다. 대학에 진학 못한 청년에게 공부를 왜 안 했는가를 묻고, 취업에 연거푸 실패하는 청년에겐 기대치를 낮추라고 주문한다. 제 분수를 모르고 행동하니 당연히 성공할 수 없다는 식의 태도가 청년들에게 적잖은 상처를 안겨 줄 것임은 자명하다. 책을 읽으며 나는 문제가 오롯이 청년들만의 몫은 아니라는 확신이 섰다. 왜 모든 사람이 공부를 잘 해야만 하고 특정 대학, 특정 과에 진학해야만 한단 말인가. 눈높이가 너무 높다는 지적 또한 마찬가지다. 많은 일자리 중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하는 일자리를 찾기란 낙타가 바늘 구멍 들어가는 것만큼으로 힘들다. 한 번 비정규직에 발을 디디면 정규직 세상으로의 진입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정설이다. 시간이 좀 걸릴지라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고자 하는 건 모두의 보편적인 판단일 것이다. 더 아래를 바라보라는 말은 폭력과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의 청년들은 나름 잘 버티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들이 보여준 삶은 보편적이면서도 독특함이 느껴졌다. 이는 이미 꼰대 세대에 진입한 나의 한계일 수도 있다. 대학을 졸업한 지 15년을 훌쩍 넘긴 나는 이들이 만들었다는 독립 잡지 <월간 잉여>, <계간 홀로> 등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하고픈 일이 있어도 용길 내지 못했던 건 나의 삶이 유지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양세로 접어든 지 오래라는 종이책 시장, 베스트셀러도 아닌 책을 거의 자비를 들여 출판하며 꿋꿋하게 버틴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돈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막강하다. 있을 땐 잘 모르지만 없으면 사람 인생이 궁해진다. 분명 풍족하진 않았다.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재산이 있는 게 아닌 다음에야 이들이 행하고 있는 일만 가지고는 생계 유지가 쉽지 않아 보였다. 한 번도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구조를 띤 집과 고시원에서의 생활 등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층과 층 사이에 위치한 집은 반지하, 옥상보다 과연 나을까. 에어컨 실외기로 인해 빚어진 갈등 덕에 시름시름 앓았다는 고백이 왠지 저자만의 것은 아닐 듯했다. 나이가 어리니까? 아니다. 내 집 마련의 꿈은 버젓이 직장이 있는 이들에게도 이루기 힘들다. 대학생활을 위해 혹은 직장 가까이에서 출퇴근을 하기로 결심한 이들에게 가능한 선택지는 몇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데 세 시간이 걸려도 주소상으로는 경기도라서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는 학생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모든 게 비싼 가운데 으뜸은 학비일 것이다. 학자금 대출로 직장생활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빚더미를 끌어안은 청년들의 이야기에 나는 갑갑함을 느꼈다. 졸업하고 바로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긴긴 시간을 빚 청산을 위해 애써야 한다. 하물며 ‘취준생’으로 오랜 기간을 살아야만 한다. 남들이 나를 미워하지 않아도 내 자신이 너무 미울 것이다. 백조가 되지 못한 채 그저 미운 오리 새끼로서만 살다 갈 수도 있다. 슬프지만 이는 사실이다. 차라리 세상을 미워하자. 주변을 둘러보면 제대로 된 세상은 별로 없다. 오히려 모든 게 날 비웃는 듯 비틀려 있을 때가 잦다.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말이 맞다고는 하나 극한 상황에 무조건 순응해야 하는 건 아니다. 가능하다면 고쳐서 나는 누리지 못할지라도 내 이후에 오는 사람에게라도 기쁨을 선사할 수 있으면 좋다. 조금 덜 벌면 어떤가. 마음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회라면 거액의 보수를 제공하는 어느 곳보다도 청년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사회에 속한 청년들은 백조가 되어 창공을 가르는 날갯짓을 펼칠 것이다.
우리는 그냥 우리를 이렇게 부르기로 했습니다.미운. 청년. 새끼.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세대, 무기력하고 열정이 없는 세대, 요즘 애들이 다 그렇지 의 ‘요즘 애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청년은 이렇게 불렸다. 정말 그들이 가진 것은 포기와 안일함뿐일까? 이는 기성세대의 눈에 비친 편협한 이미지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더는 참을 수 없어 청년들은 스스로에 대해 떠들기로 작정했다.그렇게 월간 잉여 의 잉집장, 계간 홀로 의 짐송, 캠퍼스 씨네21 의 김 기자가 뭉쳤다.폐부를 찌르는 예리함과 통쾌함, 유쾌함까지 두루 갖춘 독립잡지 편집장들과 대학생을 가장 깊숙하게 들여다보는 기자가 풀어낸 팔딱팔딱 살아있는 진짜 청년 썰! 대한민국 청년은 어디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청년이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일컫는 이유, 자신을 흙수저라 자조하는 이유, N포세대라는 말이 미치도록 싫은 이유를 가장 생생한 목소리로 담았다. 먹고사니즘, 정치, 문화, 연애, 주거까지 다섯 개의 주제는 청년의 삶을 관통해 대한민국과 청년의 현주소를 다각도로 보여준다.
들어가며
저자 대담: 우리는 떠들어야 했다
먹고사니즘, 일자리가 생기면 불안함이 사라질까? written by. 김송희
나, 뭐해 먹고 살지 / 하나의 꿈에 매진하면 망한다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 변두리 인생 /
갑을병정의 정정정정 / 아재아재 바라아재 / 일하며 자존심 지키기 /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 /
일은 왜 열심히 해야 하나요 / 힘듭니다 불쌍합니다 도와주세요 / 거위의 꿈
정치, 더럽고 치사해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 written by. 최서윤
그래도 투표는 합니다 / 투표하지 않을 자유를 외치는 이들에게 / 시위 성애자들 /
기성세대와의 대결 구도 / 청년 대상화와 여성 대상화 / 열정 착취 / 너부터 달관하세요 /
흙자식이라뇨? / 수저게임 개발기 / 국회의원의 조건 / 전기 셔틀 지역에 추수 셔틀 가다 /
내 꿈의 목록들 / 메갈이나 일베나 그게 그거라고? / 우리에겐 공론장이 필요하다
문화, 죽은 듯 살지 않기 위해 찍 소리 내기 written by. 최서윤
‘잉여’를 창간하기로 했다 / 정기간행물을 등록하기로 했다 / 손을 내밀었더니 맞잡아주었다 /
실패한 730프로젝트 / 취존과 취좆 / 나도 웃기고 싶은 사람이지만 ‘옹달샘’처럼은 아닙니다 /
흙수저 빙고게임과 불행배틀 / 랩 가사를 쓰다 / N포세대라는 말은 불편하다 /
2030 여성을 무시하면 아주 좆되는 거야 /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고 / 모두에게 잉여짓을 허하라
연애, 한없이 낭만에 가까운 기만 written by. 이진송
왜 연애와 결혼인가 / 6학년이 웃겨? /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 그놈의 소녀 /
목적으로서의 연애, 과정으로의 썸 / 연애라는 대국민 팀플 / 연애는 마시멜로가 아니다 /
연애는 사양합니다 / 이제 그만 발효식품을 놔줘 / 결혼은 미친짓일까
주거, 내 집은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written by. 김송희
내 집은 어디인가 / 장거리 통학러의 슬픔 / 이웃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의 가난함 /
남의 고양이와 산다는 것 / 이사란 연애와 같은 것 / 다 있는데 고양이 나만 없어 /
공간을 점거하라! 주거만 문제가 아니다 / 공공임대주택, 청년 주거의 대안될까